청량한 여름을 닮은 듯 푸른빛을 뽐내는 매실의 계절이 왔다.
매화나무 열매인 매실은 중국이 원산지로, 우리나라엔 삼국시대 때 정원수로 전해졌다고 알려졌다. 고려 초기 한의학이 자리 잡은 이후, 열매를 약재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건강에도 좋고 맛도 좋은 매실을 둘러싼 궁금증을 풀었다.
◆청매? 황매?…너의 이름은
매실은 수확시기나 가공법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매화나무는 이른 봄잎이 나기 전에 꽃을 피우고, 꽃이 진 뒤에 열매를 맺는다.
이 열매는 솜털이 보송보송 난 채 자라다가 5월 하순이면 솜털이 줄고 윤기가 도는데 이를 ‘청매’라 한다. 열매가 완전히 익기 전 과육이 단단한 상태일 때 수확한 매실이다.
풋매실은 칼로 잘랐을 때 씨앗도 같이 잘리지만, 청매는 씨앗이 단단해 쉽게 잘리지 않는다. 청매엔 사과산 함량이 많아 신맛이 강하게 난다. 장아찌로 만들어 먹기 알맞다.
청매가 더 익으면 붉은 기가 돌다가 6월 중순 무렵 황금빛으로 농익는데 이를 ‘황매’라고 한다. 완숙한 이후 수확한 것이라서 청매보다 신맛이 덜하다.
구연산이 풍부해 향기가 좋고 짜면 새콤달콤한 즙이 나온다. 매실청·매실주로 담가 먹기 좋다.
‘오매’, ‘금매’, ‘백매’도 있다. 모두 가공한 매실이다.
흑갈색을 띤 오매(烏梅)는 청매의 껍질과 씨를 제거한 뒤 짚불 연기에 그을려 말린 것이다. 가래를 삭이고 구토·갈증·이질·술독을 푸는 한약재로 쓰인다.
금매(金梅)는 청매를 쪄서 말린 것이다. 향이 좋아 술 담그는 데 주로 사용된다.
백매(白梅)는 청매를 묽은 소금물에 하룻밤 절인 뒤 햇볕에 말린 것이다. 한약재로도 사용되지만 물에 담가 식초를 만든 후, 고깃국이나 채소 절임에 섞는 등 요리 재료로도 사용된다.
국내에서 재배되는 매실 품종엔 <백하가> <남고> <풍후> <옥영> <앵숙> <소림나고> 등이 있다. 대부분 일본에서 들여온 품종이다.
우리 기술로 개발한 품종으론 <옥주> <옥보석> <단아> <천매> <청초롱> <홍초롱> 등이 있다. 소금절임용 매실은 과피 주름살이 적고 과육이 많은 만생종 <남고>가 자주 활용된다.
매실주·매실청을 만들 땐 <옥영> <풍후>가 과육 비율이 높아 선호도가 있다.
◆피로해소 탁월…소화 돕는 ‘초록 보약’
2000년, 시청률 63.5%를 찍은 전설적인 드라마가 있다. MBC 월화드라마 ‘허준’이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드라마에서 허준은 역병이 돌아 수많은 백성이 고열과 설사로 죽어가던 때, ‘비장의 무기’로 환자를 살린다. 바로 매실이다.
드라마 인기에 힘입어 매실 효능에 이목이 쏠리자, 너도나도 매실청을 담그기 시작했다. 평소였다면 폐기됐을 낙과도 활발하게 거래될 정도로 당시 매실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드라마이기에 다소 과장이 섞여 있을 수 있지만, 매실은 예로부터 ‘생활 속 명약’으로 대접받아왔다. 동의보감엔 “맛이 시고 독이 없으며, 기를 내리고 가슴앓이를 없앨 뿐 아니라 마음을 편하게 하며 갈증과 설사를 멈추게 하고 근육과 맥박이 활기를 찾게 한다”고 기록돼 있다.
매실 성분의 85%는 수분이고, 10%는 당분, 5%는 유기산이다. 유기산 가운데 구연산은 근육에 쌓인 젖산을 분해해 피로를 풀어 준다.
칼슘의 흡수를 촉진하는 역할도 한다. 한국식품과학회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숙성된 매실에 들어 있는 구연산은 100g당 3103㎎으로 레몬(1660㎎)보다 많다.
해독과 소화도 돕는다. 매실에 함유된 유기산 성분이 독성물질을 분해해 상한 음식이나 풋과일로 인한 배탈·식중독을 다스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인들이 매실에 소금을 넣고 절인 ‘우메보시’를 도시락 안에 넣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반찬으로도 좋지만, 음식이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도시락 안에 매실장아찌를 넣는 것도 이런 이유다.
또 매실즙의 신맛은 위액의 분비를 촉진하기 때문에 꾸준히 복용하면 소화불량과 위장장애에 효과가 있다. 여기에 각종 비타민·무기질·폴리페놀 물질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
다만 모든 과일이 그렇듯이 씨가 단단하게 여물지 않은 ‘풋매실’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 주로 씨앗에 있는 시안화합물의 일종인 ‘아미그달린’이라는 성분이 장내 효소와 결합하면서 식중독 등을 일으킬 수 있어서다.
하지만 풋매실을 날것으로 먹지 않는 이상, 염려할 필요는 없다. 아미그달린은 알코올을 만났을 때 증발해버리기 때문에 매실을 설탕에 절이거나 술을 담그면 없어진다.
이시내 기자